+ 글이 깁니다. 사진 위주로 보신다면 글 가장 아래의 간단 요약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
다시 국립수목원의 문이 열렸다.
이제 주말에도 수목원의 문은 예약한 모두를 위해 활짝 열려있기에 우리는 얼른 그 주 토요일을 예약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어느 길을 걸어볼까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온 가족 모두 이번에 방문하면 정말 오래오래 걷다 오고 싶다는 열의가 가득해 이번에는 모두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3개의 코스를, 도시락을 먹으며 하루 동안 여유롭게 돌아보고 오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모두가 걷곳 싶어 한 수목원의 세 길은 바로, 힐링 전나무숲길, 맛있는 도시락 길, 그리고 광릉숲길.
힐링 전나무숲길이 공사관계로 인해 코스의 일부가 통제 중이라 전나무 숲길과 맛있는 도시락 길을 합쳐 걸은 뒤, 지난번 호우로 인해 길 일부 구간이 피해를 입어 통제 중인 광릉숲길을 차를 타고 봉선사로 이동한 뒤 걸어보는 긴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고 우린 아침 도시락을 챙겨 들고 수목원으로 향했다.
정문에서 출발해 우리는 숲 사이 오솔길을 지나 먼저 맛있는 도시락 길 코스의 숲 생태 관찰로에 올라섰다.
숲 생태 관찰로는 S가 너무나 좋아하는 숲에 관한 지식이 가득한 데크길이다.
길 곳곳에 걸으며 직접 관찰 가능한 지식들과 숲과 산림자원에 관한 지식이 가득한 안내판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S는 이 안내판들을 읽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매번 이 길을 걸을때면 안내판들을 항상 빠짐없이 읽는데 그렇게 알게 된 지식들을 가끔 학교 수업시간에 활용하거나 가족들에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쯤 되면 외운 것들도 좀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데, 그래도 늘 새로운지 항상 올 때마다 읽고 또 읽는다.
숲 생태 관찰로 중간에 위치한 태풍으로 인한 쓰러진 나무들, 그리고 그 나무들이 완벽한 자연의 일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생생하다.
자연재해를 포함한 여러 이유로 숲이 자연스레 마주하는 변화들을 그 속에서 가감 없이 직접 보고 관찰한다.
탄생, 그리고 죽음.
모든 생물이 거치는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담담하게 바라본다.
계절에 따라 피어나는 화사한 꽃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지 않아도 거친 바람에 뿌리를 드러내고 누운 나무를 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가치로운 숲.
아이들과 함께 수목원을 방문할 경우 꼭 한번 걸어봐야 하는 관찰로 이다.
숲 생태 관찰로를 벗어나 힐링 전나무숲길의 메인 코스이자 맛있는 도시락 길에도 포함된 전나무 숲으로 향하다 잠시 코스 외 구간-침엽수원으로 발을 옮겼다.
전나무숲길에 본격 들어서기 직전에 위치한 침엽수원.
이 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소나무와 잣나무, 구상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데 아이들은 이 곳에 올 때면 계절에 무관하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을지 고민이 된다고 하여 엄마 아빠를 당황시키곤 한다.
각종 침엽수를 보면서 어느 나무가 가장 이상적인 크리스마스트리의 모양을 갖추고 있는지 품평회를 하며 올해 산타 산타할아버지는 과연 어떤 선물을 가져다주실지 궁금하다며 재잘거리기 바쁘다.
떡 줄 사람은 아직 아무 생각이 없는데, 아직 추석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무들을 보며 제멋대로 트리를 상상하며 크리스마스라니...
가을엔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이 가장 주목을 받지만, 어쨌든 그래도 늘 묵묵한 초록만의 아름다움도 좋다.
침엽수원을 돌아 나와 국립수목원의 하이라이트, 전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전나무숲길은 국립수목원의 매우 아이코닉한 길이다. 계절과 날씨를 막론하고 매 순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전나무숲을 품은 이 곳은 국립수목원만의 특별함을 품은 곳.
전나무 숲길은 전혀 포장이 되지 않은 고운 자갈길인데, 그 이유로 유모차를 포함한 여타 바퀴 달린 물건을 끌고 가기엔 좋지 않다.
하지만 숲길이기에 접근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비포장길 그 느낌 그대로가 너무나 어울리는 곳.
이제 벌써 초등학생인 J가 유모차를 타던 시절 처음 국립수목원에 방문했을 땐, 신랑은 S와 함께 전나무 숲길을 다녀오고 난 유모차 안에서 동그란 눈으로 엄마를 빤히 쳐다보던 J와 함께 길 입구를 서성이며 두 남자들을, 그리고 J가 얼른 유모차를 졸업하길 기다렸다.
유모차에서 자유로워진 이후 온 가족 모두 손을 맞잡고 이 길을 걸을 때가 어찌나 좋던지.
추억이 자라는 곳,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커가는 숲.
짧은 종종걸음으로 아빠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걷던 아이들은 어느 센가 훌쩍 커버려 저만치 앞서 씩씩하게 걸어간다.
드높은 커다란 나무들 사이를 걷는다.
큰 전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말없이 인간을 항상 품어주는 자연 앞에서 숙연케 된다.
새들이 지저귀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 그리고 이따금의 정적.
드넓은 부지에 하루에 제한된 인원만을 수용하기에 왁자지껄한 다른 수목원에서 찾을 수 없는 고요함이 깃든 이 곳이 좋고 그저 감사하다.
그렇게 길 이곳저곳에 위치한 숲에 관한 지식이 가득한 안내판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으며 숲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싱그러운 향기에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긴다.
힐링 전나무 숲길은 원래 이 전나무숲을 걸어 희귀, 특산식물 보존원 옆으로 한 바퀴를 돌아 내려오는 코스이다.
전나무숲길 끝에 위치한 비밀 나무 이후부터는 급경사 코스가 시작이 되어 살랑살랑 산책으로 걸어 올라가기에는 살짝 무리지만 운동 삼아서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현재 이 이 가파른 언덕 이후의 내리막길 구간이 공사로 인해 출입이 불가하다 하여 아이들을 가파른 언덕은 올라가지 않는 게 어떠하냐 설득해 보았다.
결과는 대실패. 아이들은 길이 막힌 곳까지 걸은 뒤 돌아 내려가고 싶다고 우겨댔고 그렇게 팔랑팔랑 가뿐히 언덕을 오르는 아이들 뒤를 간신히 뒤쫓아 올라갔다.
“음, 별거 없네.”
아니, 공사 중이라 하였거늘 특별한 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단 말인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내뱉고 두 아이는 미련 없이 휙 돌아 올라온 길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아이들과 신랑이 동시에 흠칫, 뱀이다!
가을 숲에서 뱀을 조심하라고 하던데, 수풀 속에 숨어있던 뱀을 찾았다. 다행히도 뱀은 우리에게 아무 관심도 주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
힐링 전나무숲길을 U턴하여 내려와 맛있는 도시락 숲길 육림호 근처에 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숲에서 한참을 걷고 나서 그런지 아이들은 평상 시보다도 더 김밥을 맛있게 그리고 열심히 먹었다.
수목원에서의 피크닉은 처음이었는데, 장소도 비좁지 않고 한적하게 싸온 도시락을 여유롭게 먹을 수 있어 참 좋았다.
(신랑이 찍은 아이들이 신나게 도시락 먹는 사진은 이 곳에 올리기 어려운 게 아쉽지만 말이다.)
도시락을 먹던 J가 육림호 근처 숲 속의 카페를 가리키며 “아이스크림 하나도 먹고 갈까?”라고 묻는다.
매번 올 때마다 그곳에서 젤라토를 주문해 먹곤 했는데, 녀석은 절대 잊지 않는다.
점심을 먹은 뒤 도시락 길 탐방을 이어가기 전, 숲 속의 카페에 잠시 들러 육림호가 보이는 테라스 자리가 빈 것을 확인하고 얼른 들어가 젤라토를 세 개 시켰다.
도시락을 먹고 후식으로 쫀득쫀득 맛있는 아이스크림까지. 숲 속에서 즐기는 소소한 정찬이다.
사람들이 카페에 하나 둘 입장하기 시작했고 우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육림호의 습지식물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 전나무 숲길을 걸어올 때만 해도 초록이었는데, 육림호 스탬프 박스 옆에 서자 갑자기 가을이 쏟아져 들어왔다.
내리쬐는 햇살 속에도, 호수를 감싼 숲에도 한 발 물러선 초록 대신 한껏 부풀어 오르는 주황과 노랑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차올랐다.
수목원 내의 수생식물원과는 다르게 마치 정원처럼 잘 다듬어진 육림호는 고요하고 잔잔하다.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에도, 떨어지는 빗방울 아래서도 이 호수는 빛이 난다.
그렇게 육림호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호수를 감싸고 있는 산책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조금 전과는 또 다른 호수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데, 호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습지식물원 근처 스탬프 박스와 육림호로 들어서는 다리에서 바라보는 호수는 너무나 다르다. 둘 중 어느 한 곳에서 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고 우열을 가릴 수 없으니, 육림호에 도착했다면 호수를 꼭 한번 다 돌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어 이게 뭐지?
처음 보는 곤충이 오늘따라 유난히 많다.
육림호를 감싸고 있는 숲길과 습지 식물원에는 많은 새들과 곤충들을 관찰할 수도 있어 아이들이 발걸음을 옮기는 속도가 더디다.
육림호를 한 바퀴 빙글 돌고 걸어 내려와 휴게광장에 도착하자 삼삼오오 모여 앉아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도시의 건물 숲을 벗어나 숲 한편에 자리한 광장에 안지 도시락을 펴놓고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 그리고 벤치에 모자를 얹고 깜빡 잠이 드신 할아버지.
우리가 당연히 여겼던 이 생활이, 그리고 이 풍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쓰라렸다.
비록 우린 광장 주위 길을 잽싸게 걷고 돌아 나왔지만, 평지에 넓게 탁 트인 이 공간은 휠체어를 탄 어르신께도, 유모차에서 탈출한 이제 막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휴게광장을 벗어나 다시 정문으로 향하는 산책길에 올라섰다.
정문으로 돌아가 얼른 광릉 숲길을 걷겠다며 의욕이 불타올라 파닥거리는 두 아이들을 힘겹게 뒤쫓는다.
힐링 전나무숲길과 맛있는 도시락 길의 동선은 비슷한 부분이 많아 도시락을 먹으며 천천히 수목원을 돌아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동시에 돌아보기 좋은 길이다.
전나무숲길의 언덕이 조금 가파른지라 도시락을 먹을 시간에 염두에 두고 두 코스를 합친 동선을 짠다면 정말 완벽한 피크닉이 되지 않을까.
집속에 얼굴을 파묻고 곧 괜찮아질 거야라며 최면을 걸며 하루하루 달팽이처럼 살아가는 나날들.
지난번에 왔을 때만 해도 분명 카메라엔 초록과 파랑이 선명했는데, 이번에 찍은 사진 속 하늘의 푸르름은 지난번의 그것과 사뭇 다르며, 나무들도 어느덧 노란빛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다행이다, 그리고 감사하다.
그래도 잠시 이렇게 걸을 수 있어서.
묵묵히 흐르는 계절을 바라볼 수 있어서...
(+ 간단 요약: 힐링 전나무숲길과 맛있는 도시락 길 코스는 동선이 비슷해 동시에 걸어보기 좋습니다.
정문에서 숲 사이 오솔길을 통해 숲 생태 관찰로에 들어선 후, 침엽수원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 전나무 숲길을 걷습니다.
하나 전나무 숲길의 오르막길은 가벼운 산책코스보다는 조금 더 버거운 길 이기에 오르막이 부담스럽다면 전나무숲길 끝 졸참나무에서 돌아 내려오는 것을 추천합니다.
전나무 숲길에서 내려오는 길과 이어지는 육림호를 한 바퀴 산책한 뒤, 휴게광장 까지 이르는 넓은 공간에서 도시락과 함께 휴식을 즐기면 오늘의 수목원 나들이 코스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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