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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국립수목원 스탬프 투어

국립수목원 걷고싶은 길: 식물 진화탐구길

by YURI_K 2020. 10. 28.

 


두둥! 드디어 우리의 스탬프 챌린지 마지막 코스, 식물 진화탐구길.
아침에 일어나보니 날씨가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수목원은 맑아도, 흐려도, 비가와도, (와 보진 못했지만) 눈이 와도 저마다 제각각의 매력이 있는 곳이니 걱정하지 않고 스템프 투어 마지막을 완성하러 출발.


아이들은 비가 오면 무늬가 변하는 우비를 입고 또 귀엽고 멋진 사진의 필수 조건인 국립수목원 모자를 챙겨 썼다.


지난주 약용수목원 길을 걷다 시들어 길에 떨어져 있던 길쭉한 어떤 식물을 발견하고 걷는 내내 그걸 들고 다녔던 J.
J는 그 길쭉한 녀석을 수목원을 떠나기 전 입구 근처 어딘가 으슥한 곳에 숨겨 놓았었는데, 이번 주 다시 수목원에 입장 하자마자 다시 자신이 숨겨둔 길쭉이를 찾으러 갔다.
“있다!” 녀석이 외친다.
용케도 일주일을 숨어서 J를 기다려준 길쭉이를 집어들고 다시 길을 떠났다.


공사중인 어린이정원을 패스해 비술나무를 지나 어디론가 길을 꺽는다(?).
어 여기가 아닌데, 잘 가나 싶었는데 길잡이 신랑이 길을 잃었다. 정말 수목원 중앙에 무슨 마법이 걸려있는 것도 아닐텐데, 왜 이 곳만 오면 우리는 헤메이는걸까.


뭐 하지만 헤메인 덕에 이미 다 수확당하긴 했지만 밤송이가 잔뜩 떨어진 밤나무 아래에 도착했다.
열매를 좋아하는 J는 역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분명히 수확당하지 않은 하나가 남아 있을 것이라며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녀석.


신랑과 S는 밤송이보다 잘못온 길을 돌아 다시 원래 길로 돌아가는데 열중하고, 그 뒤를 애처롭게 두리번거리며 J가 쫒는다.


엄마! 이거 보세요! 동그란 녀석이 있어요.
어린아이의 간절힘이 통한걸까, 찾았다. 물론 아주 작긴 하지만 벌어지지 않은 밤송이라는 사실에 만족.
사진을 찍고, 뾰족한 밤송이는 길을 걷는동안 데리고 다니기 힘든데다 이 안의 밤은 작은 동물들의 먹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J는 밤송이를 나뭇잎에 고이 싸서 들고다니다 다시 길가 옆 풀 숲에 고이 놓아 주었다.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왔다.
비술나무를 지나 우리 눈에 들어온건 어느덧 초록이 시들어버린 수생식물원.
눈이 부시던 초록은 온데간데 없고, 가을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나무들이 가득하다.
잔뜩 흐리거나, 혹은 비가오는 수생식물원은 항상 신비롭다. 그 특유의 약간은 음울하면서도 정적인 분위기가 참 좋은 곳이다.
그렇게 여름과 사뭇 다른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이번 스탬프투어를 하며 얻은 가장 큰 행복은, 산책처럼 조금은 단조롭게 걷곤하던 수목원에서 내가 찾지 못했던 특별한 식물들과 풍경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낙우송 주변의 공기뿌리가 그 중 하나이다.
수목원을 방문할때 수생식물원은 우리가 매우 좋아하는 코스여서 종종 걷곤 했지만 물가에서 잘 자란다는 낙우송이 습한 땅에서도 뿌리가 숨을 쉬기위해 만들었다는 공기뿌리를 제대로 정성들여 관찰한 적은 없었다.
수생식물원을 감싸고 있는 산책로가 끝날 무렵 길가에 울룩불룩 솟아오른 낙우송의 공기뿌리들.
‘이런게 여기 있었다니!’ 하며 감탄하다 문득 이전에는 이렇게 신기한것에 미처 눈을 두지 못했음에 반성이 된다.


늘 이곳에 올때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포토존에서 또 사진을 찍고 곁의 스템프 박스에서 스템프를 찍고 다시 또 출발.


다음 목적지는 식물진화 속을 걷는 정원.
진화 과정에 따라 선태류 식물부터 단자엽 식물까지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다고 하는 곳.
안내판을 읽고 정원을 걷는데, 그 안내판이 처음이자 마지막 안내판일 줄이야.


비록 첫 안내판에 정원개념도가 그려져 있긴 했지만 이후로는 안내판이 전무했기에 길을 걸으며 각 위치의 식물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어 아쉬웠다.
각 구역마다 그 구역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과 각 진화과정에 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면 좀 더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는 알찬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원을 빠져나와 도착한 귀룽나무, 이 정도 걷기에는 휴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아이들의 의견을 따라 스템프를 찍고 유주나무를 찾아 나선다.


언제 걸어도 이쁜 나무데크 길을 지나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걸어서 유주나무에 도착.
유주나무는 3억 5천만년 전부터 지구에 나타난 뒤로 (S말을 빌리면) 가을이면 사방에 지뢰를 뿌리는, 은행나무이다.
유주는 ‘나이가 많은 은행나무의 굵은 가지 아래로 생기는 젖모양의 혹’ 이라고 하는데 그 모양이 석회암 동굴에서 만들어지는 종유석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국립수목원에는 은행나무 2그루가 어릴 때부터 유주가 달려 자라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마주한 이 유주나무가 그 중 하나인 모양.


온몸에 잔가지가 빼곡한 유주나무는 마치 은행잎 모양의 덩굴이 은행나무를 감싼듯 했다.
스쳐 지나간 나무가 이렇게도 특이하고 신기한 나무였다니.
한참을 이쪽, 저쪽을 오가며 이리보고 저리보고.


식물진화 탐구길의 생명의 신비를 담은 유주나무 다음 목적지는 난대식물 온실과 산림박물관이지만, 지난주 방문에서 그 길을 걸었던 터라, 우리는 손으로 보는 식물원을 거쳐 다시 수목원 정문으로 향하기로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손으로 보는 식물원.
코스를 따라 이어진 가이드 손잡이가 이어진 곳을 따라 걷는데 점자가 새겨진 안내판에 S가 손을 뻗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점자를 하나하나 만져보던 S는 무슨 생각에 깊이 빠진 듯 했다.
그리고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채로 손잡이를 잡았다 또 놓았다 하며 천천히 손으로 보는 식물원을 빠져나갈 무렵 다시 한번 S가 점자판에 손을 올렸다.

“엄마”
다음은 그렇게 나를 불러세운 S의 이 작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식물원에 대한 피드백이다.

1. 가이드 손잡이에는 아무 표시가 없는거 같은데, 시각장애인은 이 손잡이를 잡고 걷다가 여기에 읽어볼 점자판이 있는 것을 어떻게 알까요?
2. 점자판이 손잡이 보다 생각보다 너무 안쪽으로 멀리 있는거 같지 않아요?
3. 이 손잡이는 군데군데 구멍이 있어요. 근데 가끔 그 구멍 중에 날카로운 곳들이 있어요. 시각장애인이 이걸 잡고 걷는게 조금 위험하진 않을까요?
4. 점자판도, 손잡이도 많이 낡았어요. 새똥도 군데군데 있고... 있어야하는 이유는 정말 멋진 곳인데 그 이유만 멋진거 같아요.
5. 손으로 보는 식물원이 아니라 손으로도 보는 식물원이면 어때요? 모두가 함께 읽을 수 있게 점자에 적힌 내용이 글로도 적혀있으면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요?


나도 S만큼 꼼꼼히 이 곳을 둘러보진 않았기에, 과연 가이드 손잡이에 아무 표시가 없었는지, 그 손잡이에 있던 구멍들이 날카로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준 아이의 피드백을 솔직하게 여기에 적어본다.
조금만 더 잘 관리가 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식물과 숲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이가 말한대로 점자와 글자가 함께 공존한다면 정말 모두를 위한 식물원이 되지 않을까.


나오던 길, 유모차를 위한 길이라는 표시 발견.
유모차나 휠체어, 누가 오더라도 모두가 수목원을 즐겁게 걸어볼 수 있게 <바퀴를 밀어볼까요> 수목원길 코스도 생기길 바라며.


덩굴식물원&수국원을 통해 정문으로 돌아가던길.
지난주보다 수국이 더 붉게 물들어 참 예뻤다. 예전에 몸이 건강할땐 종종 수국이나 다른 꽃들을 사다 집 곳곳에 두곤 했는데, 몸이 안좋아지니 그마저도 힘들다.
이렇게라도 나와 예쁜 꽃들을 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


항상 남들이 못보는 것을 찾곤하는 J가 수국원을 나서며 또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달팽이!
나뭇잎 아래에 몰래 숨어 있던 달팽이를 발견하고 또 다시 온 가족을 멈춰세웠다.
사진을 찍기 어려울만큼 꽁꽁 잘 숨어 있던데, 평상시에 술래잡기할때면 꿩처럼 머리만 숨기는 녀석이 잘도 찾아내 달팽이의 수면을 방해한다.


이렇게 마무리 된 우리의 <국립수목원 스탬프 챌린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러모로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챌린지에 도전한 덕분에 이 힘든 시기 동안 넓은 자연을 마음껏 걸을 수 있었다.
주중내내 집콕라이프에 지쳐가다 수목원 문이 열린 주말이면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면 어찌나 행복하고 들뜨던지.
다 본 곳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내 오만한 생각이었을 뿐. 걸을 때마다 새로웠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 계절, 어느 날씨.
우리 한번 걸어볼까요? 수목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