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혼 전 15년간 함께했던 내 동생같던 반려견이 멍멍이별로 떠났을때도 난 죽음을 온전한 정신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부모님과 그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 휴가를 내고 날 지켜봐야 했을만큼 난 유난스럽게 죽도록 괴로워하며 힘들어했다.
그런데 올해, 난 두번의 죽음-이별을 경험하고 있다.
그로 인해 공황발작도 더 자주 찾아오며 상실감에서 찾아오는 우울함에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병원 예약일까지 버티고는 있지만 실은 무척 괴롭다.
현실과 꿈, 그리고 환청인지 환각인지 모를것들이 뒤죽박죽 되어 어느게 사실인지 모르는 날이 종종 있다.
당장 이번 주말에 있을 일에 대해서 수십번을 들은 상태인데,
정작 달력을 보며 이번 주말에 내가 무슨 계획이 있던가 하며 고민을 한다.
잠꼬대를 하면서 일어나 내가 지금 꿈 속을 걷는 것인지 현실에서 마주하는 일인지 헛갈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뇌가 수축하는 듯한 느낌을 이겨내다 가슴을 부어잡는 바람에 남편이 황급히 가져온 약을 먹곤 한다.
그렇게 약 덕분에 공황 속에서도, 우울 속에서도 어찌저찌 하루를 버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날, 꿈 속에서 할아버지가 너무나 하얗고 투명한 공간 속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셨다.
처음엔 할아버지인지 알아보지 못할정도로 할아버지는 젊고, 얼굴에서 빛이 났으며, 그 공간의 문이 닫힐때까지 아무말 없이 날 보고 계셨다.
꿈에서 깨고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지만 리리카 부작용에 시달리던 최고 정점의 시기라 너무 어지럽고 힘들어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주말에 할아버지를 보러가자고 남편에게 운전을 부탁하는 메세지를 남겼는데, 난 그 날 그 메세지를 보낼게 아니라 힘들어도 할아버지를 보러가야 했다.
그렇게 다정한 할아버지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아드릴 기회를 놓쳤다.
그로 인해 생긴 죄책감과 상실의 슬픔이 날 짓눌렀다.
할아버지의 입관을 지켜보면서 죄송하다고, 사랑한다고 울면서 끝없이 읍조렸다.
부모님이 분가하시기 이전, 할아버지댁에 살았던 어린시절.
광풍의 역사를 살아오신 할아버지가 해 주시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해하기엔 난 너무 어렸다.
한 편의 역사책 속을 묵묵히 걸어오시며 이겨내신 할아버지의 삶은 그 나이의 나에겐 그저 무섭고 슬프며 참혹한 이야기였지만, 그 시간을 살아오신 할아버지가 내겐 늘 존경스러운 영웅이었다.
할아버지와 외출할때마다 할아버지의 그 하얗고 보드라운 손을 꼭 잡고 걸으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는데,
함께했던 마치 이제 오래된 소설 속 이야기같은 추억들이 자꾸만 떠올라 울며 웃었다.
인내의 시간 속 항상 한결 같던 분.
시련과 고통이 엄습해도 포기하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도 늘 반짝이던 가족의 등대.
부디 내 영웅, 그 곳에선 아프지도 상처도 없기를.

난 곤충에게 공포증이 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난생 처음으로 정을 준 반려곤충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J가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우연히 구출한 사슴벌레 ‘짭슴이’.
아이들 여름 방학 첫날, 이상원 미술관 스테이에서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 객실로 돌아오는데, 작은 곤충 하나가 바닥에서 팔다리를 휘젓고 있었다.
걍사슴벌레, 참사슴벌레로 불린다는 종인데 다른 사슴벌레들에 비해 수명이 짧다고 했고, 뒤집어져 있으니 오래 못살지도 모른다하여 집으로 데려왔다.
하루, 이틀 버티려나 했는데 생각보다 잘 살아주었고, 남편이 이름을 붙여주며 우리 가족이 되었다.
곤충을 무서워하는 나, 그리고 함께 살게된 녀석.
자신의 집에 바짝 붙어 까만 눈으로 날 바라보곤 했다.
뿔같이 생긴 큰 턱에 까만 눈, 그리고 반짝이는 얼굴의 일부분이 정말 사슴인 듯 보였고,
배에 있는 부숭부숭한 황금빛 털을 가진 귀여운 모습에 짭슴이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녀석은 밤에 자신의 집을 박박 긁곤했다.
수면장애가 있는 난 그 소리에도 깨곤 했고 녀석의 집으로 다가가 한참을 바라보았다.
답답한건 아닐까, 자연에 살게 둘껄 괜히 데려와 힘들게 하는건가 싶어 미안했다.
그래서 그 날 이후, 짭슴이의 집 천장이자 뚜껑을 열어두고 원할땐 나올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녀석은 종종 자신의 집을 나와 산책을 하곤 했다.
집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며 가족들 손이나 등, 때때론 머리까지 타고 올라갔다.
나도 용기를 내 녀석에게 내 손을 내밀었고 녀석을 즐겁게 내 몸에 매달려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곤 했다.
그렇게 사육통 밖을 벗어난 짭슴이는 가족들 몸에 매달려 생활을 하고, 우리가 여행을 갈 때도 빠짐없이 따라나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날 붙잡는 짭슴이 다리 힘이 약해졌다.
이별이 다가오는걸 내 몸은 알아챘지만 내 머리는 부정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을 너무 많이 줘 버린터라 그래도 이 녀석을 우리랑 좀 더 오래 함께 할꺼라고 현실을 부정했다.

녀석이 사슴벌레별로 떠나기 이틀 전 밤,
테이블에 앉아 내가 수를 놓는 동안 녀석은 내 어깨에서 머물다 의자로 내려가 한참을 맴돌았다.
그러다 잠시 수를 내려놓고 물을 마시고 온 뒤, 바닥에 앉아 한 숨을 돌리던 차.
짭슴이는 갑자기 의자에서 맴돌다 바닥으로 내려왔다.
힘이 많이 빠진 다리지만 열심히 짭슴이는 걷기 시작했고, 어디를 그렇게 분주히 가려는건지 궁금했다.
헌데 녀석이.
힘들게 힘들게 걸어 내게 왔다.
그 먼거리를 걸어서 결국 나에게 왔다.
내 손위로 올라온 녀석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는 동안, 짭슴이는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비록 곤충이지만 마치 내가 누군지 기억하고 알아보는 것처럼…
그리고 이틀 뒤, S의 뮤지컬 공연 당일.
우리가 모두 집을 비운 사이 짭슴이는 전날 내가 청소해준 집에서 자던 모습 그대로 사슴벌레별로 향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육통에서 녀석을 보고 손에 올리고 당황해 짭슴이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절규하던 내게,
짭슴이는 내가 매번 귀엽다고 칭찬해준 더듬이를 마지막 힘을 다해 살포시 흔들어줬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엄마는 항상 내게 넌 쓸대 없는 잔정이 많다고 하셨다.
세상 모든 것에 그렇게 정주고 살지 말라고, 너만 힘들다고 하셨지만 기질이 그런지라 어쩔 수 없었다.
항상 주변의 모든것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이든다.
그 정이 든 이후 맞이하는 이별은 몹시도 괴롭다. 상실감과 공허함에 빠져 울음으로 하루를 채운다.
그렇게 괴롭다 보면 공황이라는 검은 손이 내 몸을 옥죄어 온다.
벗어나고 싶은 반복적 패턴이지만, 내 주변의 것들에게 정을 주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기에 난 늘 반복한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공허하다, 끝내 공황에 빠진다.
올해 두 번의 이별, 나중에 내가 죽으면 사랑했던 모두를 다시 만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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