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음식을 가린다.
맛 없는걸 안먹는다, 라는게 아니라 못 먹겠다고 생각하는건 거의 시도하지 않으려는 속칭 편식쟁이다.
그래서 이렇게 몸이 아픈건가. 아무튼 입이 짧아 그 어떤 산해진미라도 못 먹는 음식은 먹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처음에 방문했던 그 날부터 ‘이 곳의 음식은 절대 나에게 먹지 못할 것을 주지는 않겠구나’ 라는 두터운 신뢰와 맛을 제공한 곳이 있다.
미쉐린 가이드 원스타, 테이블포포.
첫 방문은 둘째를 낳은 후 첫 결혼 기념일 이었다. 내가 남편에게 미루는 접시 없이 모든 코스를 다 먹는 모습을 보고 남편은 ‘드디어 찾았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 후로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이 곳을 가곤 했다. 물론, 아이들이 해당 일에 친정에 놀러가 집에 없는 경우에 말이다.
하지만 지난 7월,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방문했던 이상원 뮤지엄 스테이에서 두 아이들이 코스요리를 잘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보고 남편과 함께 이번 생일 주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테이블포포를 방문하기로 했다.
첫 도전이니, 저녁 코스는 미루고 일단 런치 코스에 아이들과 함께 도전해 보기로 했다.
갑각류 중 유일하게 랍스터 알러지가 있는 S에 대해 미리 이야기 드렸고, 조리되지 않은 날것을 잘 못먹는 아이들을 위해 가급적 코스에 사용되는 주재료들을 익혀서 조리해 달라 부탁드렸다.
이렇게 귀찮은 부탁을 드리면서 가야 한다는 것에 죄송하기도 하고 좀 염려도 되었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곳이니 염치불구하고 믿어보기로.
방문 당일.
아이들과 방문한 것이었지만 여전히 서버분은 친절하셨고, 아이들에게 직접 먹지 못하는 것도 다시 한번 물어봐 주셨다.
새우에 알러지가 없지만 극도로 싫어하는 J가 ‘새우요!’ 라고 외쳤고, 남편과 나는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보라며 나무랐지만 서버분께서 아이에게 친절히 다른걸로 대체 해 주시겠다고 해서 감사하고 또 어찌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긴 여행 후 돌아오는 길이라 오늘은 차를 가져와 와인을 패스해야 해서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여행 후유증을 달래줄 완벽한 식사에 기대가 부풀었다.
그렇게 포포에서의 점심.
아뮤즈부쉬가 서빙되었을 뿐인데 맛있다며 두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기대가 차올랐고, 기다리던 식사가 시작되었다.







긴 말과 설명이 굳이 필요없을 만큼 한껏 우러나오는 제철의 향과 맛에 감탄, 그리고 감사.
해물을 좋아하는 S는 그저 감탄을 연발하며 식사를 이어갔고 해물보단 육식을 좋아하는 J조차도 한 코스 이외엔 모든 접시를 비웠다.
익히지 못한 광어를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구운 전복으로 접시를 구성해 주셨는데 대체된 식자제로도 접시는 완벽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식사 구성이었는지 고기를 더 좋아하는 J가, 이 날 최고의 접시로 민어 스테이크를 꼽았을 정도. 그러고는 이걸 집에서 다시 해달라는 말만 빼면 완벽했다.
그야말로 모든 가족이 행복했던 점심, 완벽한 우리 가족의 table for 4 였다.
S 와 J, 두 아들이 많이 컸구나 라고 세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건강하게 성장하는 두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저변이 넓어짐에 감사한다.
앞으로는 더 많은 것을 아이들도 함께하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고 두근거리는지!
좀 더 크면 이제 디너를 도전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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